옥타비아누스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 하였지만, 모든 것은 이미 끝난 일. 그러나 유언대로 유해를 안토니우스 옆에 묻어주었다고 한다.알고 있어요 참자를후리는 나일의 독사, 아니 결결한 매춘부라고 더 노골적인 것도 있죠 아주 명예로운 별명입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나을 지경이에요차제에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사오나. 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막론하고 외국의 어떤 왕조든 독약에 관한 연구에 정진하고 있사옵니다.클레오파트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안토니우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사람도 벌써 쉰한 살, 처음 만났을 때 헤라클레스가 되살아났다고 할 만큼 아름다웠던 눈동자의 광채는 이미 사라지고, 피부는 살이 찌는 바람에 축 늘어지고, 손발의 정갈함도 잃었다.암모니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클레오파트라의 대답을 기다렸다.차례리키리우스의 간청에 자결을 보류하기는 했지만 안토니우스는 이미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안토니우스는 여왕에게 편지를 써서 나는 이제 인간이 싫어졌다. 아무와도 만나고 싶지 않아 왕궁 근처의 안티로도스 섬에서 은둔 생활을 하겠노라고 전했다.그 가정적인 옥타비아가 혼자서 2000명이란 군사와 지원물자를 준비했을 리도 만무할 뿐더러 그 배후에 반드시 동생 옥타비아누스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였다. 이 시점에서 안토니우스가 로마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처남치 술수에 휘말려 아테네까지 아내를 만나러 가고 그 기세를 몰아 파르티아 원정에 나선다면, 하고 생각하자 클레오파트라는 밤에도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여곡절 끝에 성취한 결혼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그리고 또 안토니우스가 재차 파르티아 원정에 실패하여 로마에서의 지위를 잃게 되면 상대적으로 옥타비아누스의 세력이 강성해질 것임은 뻔한 일이었다. 그 모든것은 이집트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토니우스를 이집트로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이전보다 한층 깊은 고뇌에 쉽싸인
안토니우스 각하의 기억 속에는 이미 이집트에서 있었던 일 따위흔적도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여왕 폐하를 배려하셨다떤 여왕의 용테가 어떠한지 편지 정도는 보내줄 수 있었겠지요아폴로도스는그렇게 말해놓고서는자신의 말이 지나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나 메리에트는 그 말에 동의를 표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독약도 무기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아든 풀비아가 어떤 심경이었을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풀비아는 원래가 격한 성격이라서 안토니우스를 만나기전에도 두 번이나 결혼한 경험이 있었디 그때마다 낳은 아이 세 명을 데리고 안토니우스와의 생활을 시작한 지 6, 7년이 되었다. 출신이 귀족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도시에서 고리대금업을 한 관계로 풀비아도 그 뒤를 이어 제법 상당한 돈을 만지고 있었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빛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연상에다 아이까지 있는 풀비아와 결혼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아침부터 밤까지 풀비아의 고함 소리로 가득하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편으로 안토니우스는 적당히 바람을 피우면서 아내를 사랑하기도 하였다. 처세술에 능한 풀비아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에든 편리함이 따랐을것이다. 남편의 신변에 관한 보고가 속속 들어을 때마다 풀비아는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며 클레오파트라를 저주하였다. 미모의 이집트 여왕에 대해서는 그녀가 로마에 체재했을 당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고, 낭편과 함께 야니쿠룸의 별장으로 초대받은 일도 있었다. 안토니우스에게 외도란 버릇과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눈이 멀어 아무리 충고를 하여도 듣지 않았다. 쪼히려 그냥 놔두면 언젠가는 열이 식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번 역시 혹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후련하게 타르수스에서 소식을 보내줄 것이라고 풀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려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에는 왠지 좋지 않은 예감도 들었다. 무슨 수를 쓰지 않고 그냥 방치해두면 안토니우스가 영원히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